9시까지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했다. 이미 3학년 선배들과 밴드부는 도착해 악기를 세팅하고 있었다. 빨리 가서 내가 당장 할 일은 없었다. 이번 축제에서 내가 맡은 일은 작년에 이어 사진 촬영. 작년에 너무 열정적으로 촬영을 하고 다녀 축제 당일 저녁에 몸살이 난 적이 있어 다른 일을 맡고 싶었지만, 내가 방송부에서 유일하게 DSLR을 개인 소지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다. 사진 촬영은 MR이나 조명에 비하면 현장에 가서 직원분께 뭘 배울 필요도, 리허설 때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 본 공연 때 멋진 사진 몇 장 건지면 된다. 물론 그 몇 장 건지기 위해서 2000장 이상을 찍으러 공연 내내 걷거나 뛰어야 하긴 하다. 난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 체력이 약한 편이라,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적게 걸어도 쉽게 다리 아파하는 편이다. 그래서 MR 재생 등의 걷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MR도 계속 일어나 있어야 하는 건 똑같다). 다른 일의 담당이 되고 싶어 전전긍긍하던 중, 선배가 나를 불렀다.
선배는 방송부가 아닌 학생회 부장 중 한명으로, 축제 공연 담당이었다. 무대 장치 조종에 대한 설명을 듣다 지나가던 나를 설명 같이 들으라고 부른 것이다. 커튼이나 스크린 같은 무대 장치 조종은 작년까지는 학생이 아닌 직원이 직접 했다. 아마 안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선배가 무슨 말을 했는 지 학생에게 맡기신다고. 무대 장치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엘리베이션 조종과 거의 비슷했다. On/Off 버튼, 위로, 아래로, 멈춤. 커튼들은 왼쪽, 오른쪽 버튼이 더 있다. 그리고는 조종기 전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정지를 할 때 열쇠를 오프쪽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비상 멈춤을 눌러 전원을 끈다. 비상이 비상이 아니다. 설명을 들은 후에는 마이크 온/오프를 알려주셨다.
교회에서 스탭분들이 마이크를 싱어에게 주고 방송실을 향해 마이크 번호를 손가락으로 알리는 걸 본 적 있는 나는 무대 방송실에게 마이크 볼륨을 올려달라는 등의 요청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헤드셋을 하나씩 받았다. 왠지 굉장히 스텝 같이 보이는 헤드셋. 현장 소리를 위해 한쪽 귀는 없고 마이크가 달려있는, 그리고 테이프 4개를 쌓아놓은 것 같은 큰 송/수신기에 달려있는 헤드셋. 이걸로 조명실 겸 방송실과 통신한다고. 헤드셋에서는 살짝 노이즈가 들렸다. 바로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닌데 계속 듣다보면 헤드셋을 잠시 목에 걸치고 싶은 정도의 노이즈였다. 직원분에게 노이즈를 해결해 줄 수 있냐고 묻자, 자기는 들리지 않는댄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가…
내 캐논 750D는 다른 방송부원에게 넘기고 나는 선배와 함께 무대 장치 조종을 담당했다. 방송부원 중에는 제일 여유로운 자리였다. 스크린은 공연 순서 중 세네번 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앉아있으면 심심하니 가끔 의자를 옮기는 일을 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일하는 게 재밌다.
공연은 히든가왕 문자 집계를 제외하면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히든가왕 문자 투표는 세번 이루어졌는데, 첫번째는 문자를 보내야 하는 전화번호를 잘못 공지해서, 두번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집계가 되지 않아서.
공연이 무난하게 진행되었던 이유는 사전 준비 등이 거의 필요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밴드부의 공연과 히든 가왕을 제외하면 모두 사전에 준비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학급 공연이었다. 작년 같은 선생님 밴드, 기타 합주, 연극 등이 없었다. 내가 관객이었다면 순서표를 한번 훑어보고는 친구가 있는 학급이 아니면 구석진 의자에 앉아 밀리시타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춤은 처음에는 흥미를 끌기 쉬우나, 계속 반복되면 흥미를 잃기 쉽다. 축제의 주역은 학급의 춤이 아니라 악기 합주나 연극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학급들의 춤이 너무 많다 보니 춤 동아리의 춤도 그리 주목을 끌기 어려웠다. 아니, 그보다 축제 첫날의 학교 강당에서의 공연 시 다른 학교의 남자 춤 동아리가 와서 공연을 했는데 잘 춰 학생들의 머릿 속에 각인되어 기억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 공연들은 잘 추는 편이 아니다.
연극은 축제 동아리 참가 오디션에 참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탈락해서 오르진 못했다. 그들의 수준이 어땠는 지는 오디션 현장에 있지 않아 알 순 없지만, 잘하든 못하든 축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해 공연 순서를 좀 더 다채롭게 해야했을 것이다. 축제가 너무나 춤판이여서, 과장되어 표현하자면 마치 재롱잔치 같았다. 내년에 학생회의 일원에서 부장이 되니 이 점은 내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의 학교 축제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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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너무 글을 올리지 않아 일기라도 남겨보자 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 보았다. 주제가 무엇이 됐든 글을 많이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